시작하기 전에 정정 안내.
의문 2에서 "여자는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라고 했는데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2)
라고 써 있는 부분을 제가 잊어버렸네요.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신 후 그녀를 아담에게 '직접 이끌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여자는 만나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끌다"라는 히브리어 "יְבִא" (예브이) 는 3인칭 단수 남성형 동사 입니다.
이끄는 주체가 남성이라는 말이고 그 남성이 '아담' 아니면 '하나님'인데 문맥상 아담은 아직 여자를 만나기 전이니 이 남성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로 오셨기에 하나님과 여자는 만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과 하와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는 거 인식하시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의문 4. 만약 아담이 하와가 건넨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뭐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다고는 하지만 재미 삼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한 선악과 문제에서 이 부분은 어쩌면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된 사건이기 때문에 가정을 해보자.
이 부분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게 증명된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말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았던 아담이, 하와가 건넨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보다 하와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왔고, 그 죽음 때문에 인간은 유한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봤다.
만약 아담이 하와가 건네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첫째, 이미 선악과를 먹은 하와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그녀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을 얻을까 염려되어 아마 쫓겨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둘째, 아담은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질책을 들을 지언정 쫓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살중살 뼈중뼈'인 하와가 생각나서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인간의 역사는 영생하는 아담 한 명으로 끝일까??
여기에서 곁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곁가지 의문 : 선악과를 먹기 전에 아담과 하와 말고 다른 인간은 없었을까?
이 의문은 선악과를 먹고 안 먹고를 떠나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과연 에덴에 인간은 오직 아담과 하와만 존재했을까?
난 아담과 하와의 자식이 이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뚱딴지 같은 소리' 같지만 왠지 그럴듯도 하니 일단 한 번 츄라이 츄라이~
그 첫번째 증거는 창세기 1:28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창세기 1:28 상반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동물들에게만 생육과 번성을 이야기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복까지 주시며 생육과 번성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미 에덴 동산에 많은 동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하는데 아담과 하와 단 둘이 그렇게 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적지 않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그건 적절치 않다.
두번째 와 세번째 증거는 창세기 3:16이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6)
두번째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이 하와에게 하신 말씀이다.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임신하는 고통이 커진단다. 영어로는 더한다는 표현을 'increase (늘리다. 증가하다)'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 단어 " אַרְבֶּה֙"는 "번성하다, 늘리다" 라는 의미로 창세기 1장에서 동물과 사람에게 하셨던 명령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실 때 썼던 단어와 동일한 단어다.
일단 '뭔가를 늘린다'는 건 늘릴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즉, 늘리기 전의 기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말은 이미 하와에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고통이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처음 경험하면 그것이 다음 경험의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와가 이미 출산의 경험을 알고 있기에 기존보다 고통을 더 크게 더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세번째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와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여기서 말하는 '원하다'의 히브리 단어 " תְּשׁ֣וּקָתֵ֔ךְ"는 단순한 '희망'을 나타내는 게 아닌 '욕망, 갈망, 열망' 등의 표현으로 강한 집착과 같은 의미와 함께 '육체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왜 하와가 그토록 아담을 갈망할 정도로 원하게 될까?
이 세상에 여자가 하와 한 명이라면 그럴 필요까진 없을 텐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니 시간이 좀 지나면 결국 다시 하나가 될텐데도 하나님은 굳이 "다스릴 것"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이건 여자가 하와 말고 '더' 있어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이로서 곁가지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봤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읽는 나만의 창세기 방법이기에 "이게 맞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봐주셨으면 한다.
난 이단 되기 싫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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