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전작시] 가인의 제사 VS 아벨의 제사

헤페츠 2024. 7. 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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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이름에 관해 알아봤으니 이제는 그 둘의 제사에 대해 알아보자.
성경에 나온 대로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았다고 알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런지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

가인과 아벨의 제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3~5)

 

1. 가인의 제물

가인의 직업은 농부다.
가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버지 뒤를 이어 농사일 밖에 할 수 없었고,
당연하게도 농사를 짓는 농부의 제물은 땅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경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는 "가인의 제물이 피흘림이 없는 제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그게 사실일까?
 

2. 아벨의 제물

아벨의 직업은 양치기다.
때때로 양을 몰아 꼴을 먹이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 있다.
 

"아벨은 왜 양을 쳤을까?"

 
농사일을 돕기 위해서라면 양대신 소를 치는 게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참고로 소의 가축화는 기원전 8,000년 경이고 이를 이용한 농사는 기원전 6,000년 경부터 라고 한다.)
농사에 도움도 안되고,
더구나 식량으로는 양젖 외에 가치가 없는 양을, 
(육식은 노아 홍수 이후 가능했다. 창 9:3)
아벨은 굳이 농사일 대신에 양치기를 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굳이 양을 쳤다.
 
어쨌든, 이 의문을 뒤로 하고 아벨의 제물을 살펴보자.
 
개역개정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이라고 되어있지만, 히브리 원어는 조금 다르게 표현 되어있다.
 
"מִבְּכֹרֹ֥ות צֹאנֹ֖ו וּמֵֽחֶלְבֵהֶ֑ן" 이걸 문법적으로 구분하면
 

  1. מִ (mi-): 전치사 "~로부터", "~중에서"
  2. בְּכֹרֹ֥ות (bechorot): בְּכוֹרָה (bechorah)의 복수형, "첫 새끼들", "맏이들"
  3. צֹאנֹ֖ו (tzo'no): צֹאן (tzon) "양떼" + ֹו (-o) 3인칭 단수 남성 소유격 접미사 "그의"
  4. וּ (u-): 접속사 "그리고"
  5. מֵֽ (me-): 전치사 "~로부터", "~중에서" (מִ의 변형)
  6. חֶלְבֵהֶ֑ן (chelvehen):
    • חֵלֶב (chelev) "기름", "최상의 부분"
    • הֶן (-hen) 3인칭 복수 여성 소유격 접미사 "그것들의"

이걸 직역하면 "그의 양떼 중에서 첫 새끼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름 중에서" 라는 의미다. 
 
여기서 알 수있는 몇 가지 사실 

  1. 아벨이 바친 양은 한 마리가 아니다.
    • "בְּכֹרֹ֥ות"은  복수형을 나타내고 원어도 "첫 새끼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 아벨이 키운 양의 수는 떼를 이룰 정도다.
    • "צֹאן" 양떼를 나타내는 이 단어는 수 십마리(창 12:16, 20:14)든, 수 백마리(창 30:43, 32:14)든, 수 천마리(삼상 25:2)를 표현할 때 동일한 단어로 사용되었다. 
    • 아벨이 키운 양은 단순하게 이번에 제사 드리려고 두어마리 키우는 게 아닌,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키웠다고 볼 수 있다.
  3. 기름은 단순한 지방이 아니다.
    • 여기에 사용된 단어 " חֶלְבֵהֶ֑ן "는 단순한 지방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양의 부속 중 가장 좋은 부분"을 이야기 한다.
    • 실제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내장지방'은 가장 영양가가 높고 높은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인식하여 종교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뤘다.

이러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3. 하나님의 반응 1

4절과 5절에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에 하나님의 반응이 나온다. 
잘 알다 시피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고 개역개정은 말한다. 
혹시나 싶어 다른 번역본을 확인해 보았다. 

  • 공동번역 : 그런데 야훼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 새번역 :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 현대인의 성경 : 여호와께서는 아벨의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다.

 
어떤 번역본은 "받고/받지 않고" 라고 나오고 다른 번역본은 "반기고/반기지 않고" 라고 나왔다.
그럼 히브리 원문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וַיִּ֣שַׁע יְהוָ֔ה אֶל־הֶ֖בֶל וְאֶל־מִנְחָתֹֽו׃ וְאֶל־קַ֥יִן וְאֶל־מִנְחָתֹ֖ו לֹ֣א שָׁעָ֑ה
 
문장 구조 분석:

  1. "וַיִּ֣שַׁע יְהוָ֔ה אֶל־הֶ֖בֶל וְאֶל־מִנְחָתֹֽו"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셨다"
  2. "וְאֶל־קַ֥יִן וְאֶל־מִנְחָתֹ֖ו לֹ֣א שָׁעָ֑ה"
    • "그러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주목하지 않으셨다"

전체 의미: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셨다. 그러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주목하지 않으셨다."
(출처 : claude AI 3.5)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설명하는 단어 "שָׁעָ֑ה (sha'ah)"의 뜻은 "주목하다, 호의적으로 바라보다"라는 뜻.
아벨의 제사는 호의적으로(주목하여) 바라보셨고(과거 미완료 시제), 가인의 제사는 주목하지 않으셨다(과거 완료 시제). 
 

4. 하나님의 반응 2

두 사람의 제사에 대해 하나님은 '주목'해서 바라보거나 주목하지 않으시는 걸로 1차 반응을 보이셨다. 
그리고 다음으로 2차 반응을 보이셨는데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을 거셨다"는 것이다.
 
선악과 사건으로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인류는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100년을 살다 드디어 하나님을 아벨과 가인이 만났다!! 
더구나 아벨과 가인은 하나님이란 존재를 부모에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목격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초의 인간들 수명이 900년이 넘다 보니 이 100년이란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2024년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4년은 아직 이 대한민국이 '조선'이었을 때였다. 
조선 하니 엄청나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가? 
 
어쨌든 가인과 아벨은 그들의 부모가 단절시킨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일을 해낸 것이다!!!
 

5. 가인과 아벨의 차이 - 제물

인류가 다시 하나님과 만나게 된 역사적인 일이지만 이걸 아벨 혼자만의 노력으로 치부해야 할까?
정녕 가인의 제사는 아무런 효용이 없었을까?
 
그럼 두 사람의 차이가 무언지 확인해 보자.

  • 가인의 제물 : 농산물
  • 아벨의 제물 :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은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노동집약적인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요즘이야 기계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그나마 수월하지만 당시엔 기구라고 해봐야 돌도끼가 전부였을 것이다. (많이 쳐줘야 돌곡괭이)
장비도 빈약한 상황에서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만큼 수확을 할 수 없으니 더 넓은 땅을 경작해야 했을 것이고 
그만큼 더 많이 힘들게 고생하면서 가져온 농산물이 과연 아벨의 제물과 비교했을 때 가치가 낮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제물의 가치에 따라 하나님이 반응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벨과 그의 제물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이 주목한 건 '제물'만이 아닌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같이 주목하셨다는 의미다.
 

6. 가인과 아벨의 차이 - 사람

결국 제물의 차이가 아닌 사람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반응이 갈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 두 사람이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알아보자.
 
위에서 얘기했듯 가인은 농사꾼으로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차도 없는 시대에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쫓겨났어도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해서 에덴 동산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이 가능한 이유가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 그냥 아무 곳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닌 특정한 장소로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창 4:3절에 쓰인 히브리 단어 "וַיָּבֵ֨א (vayave)"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이 아직 하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부모를 통해 에덴 동산이 어디인지 들어서 알 것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에덴 입구나 그 근처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제물을 가져온 가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사를 드렸겠지만 아벨처럼 믿음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가 제사를 지내왔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없었고,
자신의 평생동안에도 반응이 없었기에 가인은 하나님이란 존재를 그저 '과거에 부모를 만든 존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진 가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가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다른 사람들이야 하나님을 만나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찬양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나에겐 그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일 뿐이었기에.
 
즉,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주리란 믿음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럼 아벨은 어땠을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 11:4)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과연 아벨은 무엇을 믿었을까?
 
그러려면 아벨의 직업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한다.
 
아벨의 직업은 '양치기'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당시엔 육식을 하지 않았기에 양의 효용성은 '젖과 가죽' 외에 그리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젖' 또는 '우유'처럼 음식으로 표현된 부분은 창 18:8 외엔 없다. 
(창 21:8, 32:15, 49:12에 나오는 젖은 비유적인 표현이고 음식으로써 표현된 것은 18:8 이 유일)
 
그렇다는 건 양의 젖은 아담 시대엔 그리 유용한 것은 아니었고, 결국 '가죽' 밖에 쓸모가 없다는 말이 된다.
 
자, 그럼 이 '가죽'과 관련된 구절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도 하나님과 관련된 구절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하나님 덕분에 아담 일족은 가죽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주위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죽의 중요성을 알게된 아담 일족은 이 가죽을 주기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양치기'를 시작했을 것이고,
이 중요한 일을 아담의 둘째인 아벨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적인 생각을 덧붙인다면, 
농사일이라는 건 시작하면 마무리 할 때까지 정신없고 몸도 고되다 보니 뭔가를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치기는 양을 데리고 초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방목하고 나면 사실상 할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때는 동물들도 육식이 아닌 초식을 했던 시기라 외부 짐승의 공격을 받을 일도 없고,
사람도 아담 일족만 존재했기에 도난의 위험성도 없어 농사일 보단 상대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평소 아담과 하와를 통해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분이 주신 가죽옷을 입기 위해 양치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일 해야 하는 농사 일과는 달리 에덴 주변에서 양을 치면서 하나님이란 존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아벨은 이 '하나님이란 존재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제사를 매년 드렸어도 하나님의 반응이 없는 걸 봐왔던 아벨은 자신만의 제사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물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가죽옷을 만드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며, 그 가죽옷을 최초의 인류인 자신의 부모에게 입혀주신 것을 기억하며.
첫번째 양의 새끼를 준비하고, 그 양의 기름을 준비해서 제사에 가져온 것.
 
첫번째 양의 새끼는 자신의 아버지인 아담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양의 기름(지방)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조명용 기름으로 쓰였고,
약제나 피부 치료제로 쓰일만큼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벨은 인간을 대표하는 아담인 양의 새끼와 '치료제' 또는 '불을 밝히는 재료'의 용도인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분명 하나님이 응답하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백년 만에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에 주목한 것이다!!
 

7. 그래서 가인의 제사는?

아벨의 제사로 인해 하나님이 반응하신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6~7)

 
선악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그 깨진 관계가 아벨의 제사로 인해 회복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
만약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은 실패한 제사였다면 실패한 제사를 드린 가인에게 굳이 하나님이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모세가 제정한 5대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중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아담 일족이 드리던 곡식 제사를 드린 의미는 '한 해 동안 농사를 잘 지어 이만큼 수확을 거두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제의 의미도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감사'라는 건 받는 사람이 반응해주길 바라고 주진 않는다. 
뭐 예의 상 '고마워'라고 서로 간에 표현을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해봤자 하나님에겐 그리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받았기에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통해 그들에게 나타나서 가인에게 말씀을 전하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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